완득이(2011) - '완득이'만 서글픈 영화?

 

 나는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한국영화가 진부하고 재미없어서' 라는 둥의 미식가적 이유는 아니고, 간혹 출연 배우 중에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배우가 있을 경우에 알아 듣는 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놈놈놈'에서 정우성이 그랬다. 말을 타고 사막을 누비며 장총을 쏘는 모습은 가히 레골라스의 뺨따구를 날리고도 남을 장관이었지만 난 영화관에서 정우성이 하는 대사의 70% 이상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같이 간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방금 뭐래?'라고 물어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이 쯤 되면 정우성의 발음보다는 내 청력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완득이'는 이런 내가 영화관까지 가서 관람한 영화다. (물론 각각 '추격자', '앤티크'를 통해 봤던 두 주연 배우의 발음이 정우성보다 또렷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우성에 대해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 '놈놈놈' 보러갔을 때 진짜 오질라게 못 알아듣는 나한테 친구가 짜증냈기 때문에 친구한테 악감정이 있음.)

더불어 나는 원작 소설을 보지 못했다. 다만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는 흔하디 흔한 '문제아와 그를 갱생하게 만든 인생 멘토'에 대한 이야기라고 어림짐작 했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영화는 제목과 같이, '완득이'에 대한 영화다. 도완득은 문제아도 아니고, 동주 선생 또한 인생 멘토가 아니다. 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내용 또한 눈물 나는 갱생 스토리가 아니다. 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발하게 톡톡 튀는 영화도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를 영화의 감성을 잃지 않고 그럴 싸하게 포장해낸 매력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억지 감동에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연출이라고 혹평한 사람도 보았지만, 사실상 영화 속에서 '완득이가 불쌍하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도완득 자신 뿐이다. 가난하고, 인기 없고, 엄마도 없고, 비웃음 거리나 되는 아버지에 덜 떨어진 삼촌, 게다가 학교에서 창피나 주는 담임까지. 아무리 골몰히 생각해도 제 인생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완득이는 뻑하면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불쌍한 새끼가 있겠냐!'며 항변한다. 그러나 동주 선생도, 아버지도 열심히 살라고만 하지 완득이를 안쓰러워 하거나 아픔을 다독여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 천지에 불쌍한 사람이 깔리고 널렸으니 니 인생은 살만한 것 아니냐는 태도다. 남의 인생을 돌아다 볼 여유가 없는 완득이는 홀로 너무도 서글프고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 루저' 도완득의 처지 비관은 필리피노 어머니를 대면하고 나서 고공행진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완득이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람은 없다. 아픔을 이겨내는 것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멋진 인생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수치심이 되는 것도 다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다.

완득이가 자신을 신파극의 주인공으로 옭아매는 마음 속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동주 선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주 선생에게서 '굿 윌 헌팅'의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을 안아주며 'It's not your fault.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였던 것처럼 가슴 따뜻한 멘토링을 볼 수는 없다. 동주 선생은 따뜻 보다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고, 이해 보다는 자기 식의 가치관을 밀고 나가는 데에 강점을 가진 남자다. 도완득이 아무리 패배감 속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얌마 도완득! 어머니한테나 잘해드려!'하고 맵게 소리치는,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스승님이 아니라 우리의 학창시절에도 왠지 한 명 쯤은 있었을 것만 같은 익숙함을 가진 선생인 것이다. 그런데도 완득이가 자신의 삶을 사는데 동주 선생이 도움이 된 이유는, 그는 '자신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것을 기준 삼아 꿋꿋이 살아가는 것. 남들이 손가락 질 할 것 같은 구질구질한 집에 츄리닝이나 입고 다니는 외양, 투박한 말투가 무색하게도 동주 선생의 인생은 신념 하나로 똘똘 뭉쳐 굳건했다.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도완득은 자신의 삶을 마주 본다. 비단 완득이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흔하지만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정석대로 하지만 영화적인 매력을 잃지 않고 만들어낸 영화였다.

"멋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내 인생이니 살자!"



더불어 '완득이'에 대한 리뷰 속에서는 빠지지 않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대해 코멘트를 하자면,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한 것 같은 김윤석의 연기는 언제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색함 없이 내용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배우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김윤석은 매우 탁월하다. 물론 유아인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에서 보증 수표로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가 과분하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 주었다. 유아인은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배우다. 화보나 리얼리티 프로를 통해 보는 까탈스럽고 화려한 젊은 배우에서, 잔뜩 찡그린 얼굴에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사는 문제아까지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때로는 어떤 게 진짜 모습인 지 헷갈릴 정도다. 다만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부담스럽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차분한 역할도 잘 어울릴 지 우려가 되는데 '성균관 스캔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으려나?

"역시 김윤석! 하지만 유아인도 김윤석에게 밀리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완득이의 어머니로 등장했던 배우는 영화 '의형제'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이 자스민'이라는 필리핀 출신 배우라고 한다. 1995년 한국인과 결혼하였다고 하는데, 결혼 이민자의 입장에서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여 2012년에 열린 제8회 CICI KOREA 시상식에서 한국이미지 부문 맷돌상을 수상했다. KBS 러브인아시아 출연자들로 결성된 물방울나눔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EBS에서 외국인을 위한 (실용)한국어 강의를 약 2년 간 진행했다고 하니 지적인 면모도 뛰어나신 듯. (아닌 게 아니라 필리핀에서 의대생이셨다고..) '의형제'에 매력 넘치는 외국인 배우들이 많이 나온 모양인데, 언젠가 꼭 봐야겠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면 연계해서 보고 싶은 영화들이 줄줄 생겨나니 문제다.


완득이(2011) - 완득이만 서글픈 영화? 우리는 다 서글프고, 그래서 웃을 수도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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