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메리칸 셰프(Chef)(2014) - 뜨겁고 바삭한 이 영화!
출연진과 감독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연코 상업영화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은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다양성영화로 분류되어 아트하우스에서 조금 재미를 보다가 곧 IPTV로 옮겨갔다. 그래도 입소문을 타고 어느정도 스크린에 걸려 있었으니 대형 블록버스터가 피 터지게 싸우는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선전을 한 편이다. 칭찬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이 영화, 러닝타임 내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해준다.
보라, 인맥으로 일단 보증되는 셰프의 실력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존 파브르는 <아이언 맨>의 연출가이기도 했는데, 그 덕분인지 아이언맨의 대표 출연진들이 모습을 보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부터 스칼렛 요한슨, 거기에 더스틴 호프만과 소피아 베르가라까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배우들이 출연하여 눈이 호강한다. 각자 내노라하는 유명영화 또는 드라마에 출연진이라 스크린에 등장하자마자 미친 존재감을 뽐내면서 몰입을 방해할까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능청맞은 그들의 연기에 다시금 흐뭇해진다.
들으라, 라틴을 녹아낸 셰프의 손재주
유명 셰프였다가 한 순간에 무직이 되어버린 주인공 칼 캐스퍼는 고심 끝에 재기를 위해 푸드트럭을 선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음식이나 노점상이 일상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트럭을 개조하여 즉석 음식이나 아이스크림 따위를 파는 트럭이 매우 흔하다. 주방을 갖추고 있는 푸드트럭은 매일 판매 장소를 달리하면서 이동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영화에서 선택한 '푸드'는 바로 쿠바식 샌드위치다. 캐스퍼의 부인 역으로 등장하는 소피아 베르가라(이네즈 역)는 실제로 콜롬비아 출신인데, 영화 속에서는 캐스퍼가 쿠바 문화에 동화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1위인 미국은 실제로도 히스패닉 문화가 무시 못할 만큼 사회에 퍼져있는 모양이다. 주변 인물과 영화 전반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분위기가 상당 부분 차용된다. 경쾌하면서 열정적이고, 동시에 가족적인 그들의 문화적 특성은 영화와 잘 녹아든다.
더불어 뜨겁게 달군 납작한 철판(팬)에 빵을 굽고 샌드위치를 뜨겁게 눌러 완성하는 쿠바식 샌드위치는 팬이 달궈지는 소리, 빵을 비롯한 속 재료를 익히는 소리, 바삭한 빵이 입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 등 영화 속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소리와 함께 화면 가득 채워지는 맛있는 샌드위치, 게다가 뜨겁고 바삭한 샌드위치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경쾌한 라틴 음악. 순식간에 눈과 귀가 모두 황홀해진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다.
요리에 미쳐 요리에 모든 것을 바쳐버린 남자는 가족과 멀어지게 되었고, 어린 아들과도 데면데면하다. 아들은 매번 반복되는 아버지의 부재가 익숙할 만도 한데 매번 실망을 한다. 그런 부자관계를 이어준 것이 바로 푸드트럭이었다. 푸드트럭의 좁은 공간 속에서 함께하는 두 부자,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도 모르는 게 많은 것 같던 두 사람은 푸드트럭 속에서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는 사이가 되고, 둘이 가졌던 갈등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깔끔하게 해소되며 영화는 완성된다. 이 영화가 단순히 먹거리에 대한 영화가 아니고 셰프의 삶을 담은 인간적 영화일 수 있는 것은, 진부하지만 매번 감동 받을 수 밖에 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담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 영화라고 평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낯설지 않은 소재를 리듬감 있게, 감각적으로 활용하면서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충분히 칭찬 받을만 하다.
푸드트럭 안에는 여전히 이야기거리가 있다.
푸드트럭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실화 주인공으로 로이 최 셰프를 선택했다. 한국계 미국인 셰프인 그는 영화의 공동제작자이자 자문셰프로 활약했다. 그에게 요리를 배우는 존 파브르 감독의 모습도 영화 말미에 나온다. '컵밥'이 성공하기 이전에 멕시칸 음식과 한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김치타코'로 일찍이 유명세를 떨친 로이 최 셰프의 푸드트럭, 고기(Kogi)는 영화 속 푸드트럭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캐스퍼가 신 메뉴를 개발하는 장면에서도 고추장 소스가 사용된다.)
과거 도박의 늪에 빠져 인생을 낭비한 적도 있다는 최 셰프는 새로운 푸드트럭과 레스토랑을 런칭하면서 셰프로의 인생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푸드트럭은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이야기가 항상 풍부하고, 지금의 푸드트럭은 SNS와 결합하여 어떠한 전문적 마케팅 없이도 성장해나가고 있다. 푸드트럭의 성공신화에보잘 것 없던 청춘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인생의 이야기가 담긴 맛있는 영화. 뜨겁고 바삭한 감각이 살아있던 영화. 진부할 수는 있어도 진솔하고, 뜨거울 수는 있어도 미지근하지는 않은, 배가 고플 때 봐서는 안되는 영화라지만 멕시코 음식이 그리워질 때 다시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채워지지 않은 나의 후각과 빈 속은 쿠바노로 채우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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