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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더 라이벌(Rush)(2013) - 다큐가 되어버린 스포츠무비
크리스 헴스워스는 우리에겐 '토르'의 제어 불능 벼락 신으로 익숙한 호주 출신 배우다. 영화 속에서는 매력적인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잘 빠진 몸매와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를 바 없는 장발의 금발을 휘날리며 플레이보이 카레이서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의 라이벌 역할에는 이름조차 낯선 스페인 배우, 다니엘 브륄이 캐스팅 되어 호연을 펼쳤다. 감독은 론 하워드. 필로그래피를 보면 연출자 보다는 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듯 한데, 그나마 유명한 작품이 '뷰티풀 데이즈'다. 으악.... 보면서 재미 없어 몸서리치던 그 영화 아닌가. 그래서 였구나... 사족은 여기서 그만하고.
이 영화는 실화와 스포츠(F1)라는, 흥행 보증수표의 진부하지만 매력적인 조합물 되시겠다.
스포츠와 음악을 주제로 삼은 영화 치고 재미 없는 걸 본 적이 없다. 게다가 F1이라니. 실제 경기 장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고속의 아찔한 스포츠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더군다나 길지 않은 시간 구성된 F1 경기 장면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강도로 영화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다. 과도하게 경기 장면을 구성했더라면 둘의 라이벌 관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드라마의 영역을 침범했을 것이고, 밋밋하게 경주 차 뒤꽁무니만 쫓아가는 식이었다면 케이블 티비에서 경기 장면 해설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카메라 동선과 적절한 시퀀스의 연결은 경기 장면의 몰입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스토리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F1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운명 같은 라이벌의 탄생.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지만,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화 속 라이벌이 영화에 등장한다. '하루살이' 인생을 사는 겁 없는 폼생폼사, 하지만 경기 전에는 늘 구토에 시달리는 철부지 제임스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경주 차 튜닝을 척척 이루어내고, 낭만 보다는 철저한 계산에 이끌려 사업가의 마인드로 F1에 뛰어든 니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사실에 날카롭게 이를 세우며 대립한다. 영화 내내, 둘의 라이벌 구도는 스스로에 의해 그리고 타인들의 손에 의해 꾸준히 이어진다. 가슴 뜨거운 사나이들의 화해와 우정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F1이 낮은 경주차 속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인 것과 같이, 영화도 두 사람이 어떻게 '각자' 성장해가는 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 구도 또한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일 뿐, 그들은 서로를 자신의 라이벌이자 성장의 발판으로 인정하지만 그의 존재를 통해 무언가를 보상 받고자 하진 않는다. 때문에 러시에서 라이벌 구조는, 그간 스포츠 영화들이 보여준 것처럼, 경기장 내에서 수컷 냄새를 풍기며 부대끼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너무도 다른 둘이 각자의 존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식한 채 경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이어진다.
그렇기에 러시에서의 매력 요소는 두 사람의 '스토리'다. 둘의 스토리는 관객들을 매료 시키기에 충분할까. 우리는 그 동안 다양한 스포츠 영화 (때로는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서 뜨거운 심장을 가진 캐릭터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지만 스포츠 하나에 전부를 내던질 수 있고, 안정적인 삶보다는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스릴을 추구하기에 다소 철 없어 보이지만 '로맨틱'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대책 없음과 변덕에 혀를 내두르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유를 동경한다. 매번 새로운 여자와 등장하며, 어느 장소든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기만 하면 다음 컷에서는 그 여자를 손에 넣고야 마는 제임스도 위의 프로파일링에 적합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제임스를 연기한 크리스 헴스워스의 잘 빠진 등 근육을 보고 있노라면 러시의 매력남은 단연 제임스를 꼽아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뇌리에 남는 것은 그의 라이벌이자, 볼품 없는 외모와 투박한 악센트의 니키 라우다이다.
인생을 담은 라이벌 전, 전에 없던 매력적 캐릭터의 등장
영화 속 니키의 별명은 '생쥐'다. 작은 키(크리스 헴스워스 옆에 서니 더욱 왜소해 보인다.)에 외모도 영락없는 생쥐 같다. 마초적인 매력은 전혀 없고, 깐깐한데다 툭툭 던지는 말투는 싹퉁머리도 없다. 하지만 그의 단호함과 냉철한 판단력, 사업가적 마인드에 기인한 흥정 능력은 그가 가진 천부적 재능과 더불어 (제임스가 가진 외모적 카리스마와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는) 묘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철저한 계산과 신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선택은 진정성이 있고, 영화는 그 진정성에 기대어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창조해낸다. 쇼맨십이 없기에 영화 속 캐릭터로는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다는 위험성은, 영화 중간중간 보여주는 그의 '로맨티스트(영화 홍보 멘트 속에서는 순정남, 순애보 정도로 표현됨)'적 기질을 통해 기대하지 않은 감동을 주며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 또한, '니키 라우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믿음 부재와 라이벌 구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포스터에 크게 둘의 얼굴을 박아 넣은 것 치고는,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라이벌 구도를 균형 있게 살리지 못했고 다큐멘터리 같이 끝나버린 마지막 결말 때문에 그 동안 영화가 보여주었던 긴장감, 감동은 와장창 부서져 내렸다. 결말이 준 불쾌감이 어찌나 컸는 지 필름을 입수해 뜯어 고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언급은 하지 않음) 영화는 라이벌 구도에 좀 더 충실해야 했고, 둘이 가진 스토리를 '영화적 매력'으로 풀어내는 것에 열중했어야 했다. 한 사람의 나레이션으로 정리된 결말은 중후반까지 이어왔던 어떠한 감동도, 긴장감도 유지하지 못한 채 영화를 죽이는 처사가 되버렸다.
신나게 달리다가 바퀴가 퍼져버린 '러시'의 경주
실화를 기반으로 한 두 라이벌의 인생 경주를 한 순간에 추억팔이 다큐로 만든 결말 때문에 뒷맛이 쓰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포스팅이다. 그것도 영화 감상평.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감독과 배우에 치중되어 있는 나로서는 낯선 배우와 이름 모를 감독이 만든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사실 영화 자체를 많이 보지도 않는다.) 이번 영화는 운 좋게 시사회 표를 얻어서 보게 된 건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 뒷통수에 대고 "선물 드릴 테니까 SNS에 감상평 좀 남겨주세요!"라고 처절하게 외쳐대던 홍보팀 직원들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서 아예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많기도 하였고. (개인적 생각이지만 SNS 감상평을 구걸하는 식의 마케팅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억지 입소문에 기대 홍보 효과를 노려 보겠다는 태도는 영화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걸로 밖에는 안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준비해 온 소정의 선물을 모두에게 나눠줬더라면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백 분 발휘되어 자진해서 SNS에 자랑글을 올렸을 테니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었을 거다. 누가 강요해서 올린 홍보글이 얼마나 만족스런 수준으로 퍼져 나갔을 지는 잘 모르겠다.)
내용도, 홍보도. 뒷심이 아쉬웠던 영화 - 러시 더 라이벌(Rush)(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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