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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biutiful)(2010) - 우리는 아름다운 지옥에 산다.
비우티풀, 어딘가 익숙하지만 낯설게 들리는 단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올바른 표현은 뷰티풀(beautiful). 아름답다는 의미의 형용사다. 뷰티풀을, 비우티풀로 바꾼 투박한 사나이 욱스발. 영화 비우티풀은 단어 그대로 비우티풀한, 투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남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포스터에서 선 굵은 얼굴로 진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는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등에서 얼굴을 내비친 스페인의 유명배우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남편'이라는 호칭으로 더 익숙한 배우이기도 하다. 큼직큼직하게 선이 굵은 얼굴은 마치 고전 서양화의 등장인물을 연상케 하는데 외모의 무게감 만큼이나 탄탄한 연기력을 지녔다. 더불어 출연한 작품들의 대부분은 이미 작품성을 인정 받은 것들이니,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한 영화라면 믿고 봐도 괜찮을 듯 하다.
오랜만에 눈이 가는 배우를 발견해서 사족이 길어졌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장르보다 감독, 특히 출연 배우의 비중이 크다. 때문에 마음에 드는 배우가 생기면 그 배우의 출연작들만 편식하듯이 골라 보는 편인데 미셸 파이퍼, 하정우 이후로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블로그에 하정우를 한국의 하비에르 바르뎀이라고 표현한 글이 있더라. ㅎㅎ) 아무튼! 비우티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나도 유명한 이 영화 '씨 인사이드(2004)'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 살짝 끌어왔다.
존엄하게 죽고자 하는 남자,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남자
포스터의 전체적 구성은 거의 유사한데 느낌이 전혀 상반된 것이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씨 인사이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대 초반, 꿈 같은 시절에 다이빙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남자가 '존엄사'를 주장하다 삶을 마무리하게 되는 이야기로, 실화 주인공의 책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비우티풀은 처절한 현실을 담은 영화다. 바르셀로나의 극빈층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주 무겁고 처연하게 담겼다. 두 영화를 모두 본 내가 굳이 '비우티풀'에 대한 감상을 적고 싶었던 이유는 "삶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세상에 작별을 고한 남자보다는, 사랑하는 이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시궁창 같은 삶을 하루하루 버텨 오다가 결국엔 "나는 죽기 싫어, 죽는 게 싫어"하며 목 놓아 울어버린 남자가 마음을 더 울렸기 때문이다. (물론 씨 인사이드도 훌륭한 영화다. 감각적인 영상과 탄탄한 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추천하는 영화다. 더불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디 아더스(2001)'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수중에 돈은 없고, 저녁 상은 늘 빈곤하며 아이들은 주눅들어 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 가정을 함께 꾸릴 줄만 알았던 부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고, 사회 최약층인 외국인 노동자들과 단속반 사이에서 뒷돈을 날라주며 여기저기 있는 욕 없는 욕은 다 듣고 산다. 설상가상으로 몸은 망가졌고 살면서 웃어본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삶인데도, 죽기 싫어 눈물을 흘린다. 삶에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하지 못 해 끝을 바라보는 게 버겁다. 꾸역꾸역 살아 가고 있다는 게 옳을 것 같다. 이 처연한 이야기가 단지 애닳은 영화 속에서만 그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지옥을 살고 있다.
인생을 천국과 지옥 중 하나의 비교하자면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천국에는 웃음과 행복만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만드는 것은 '상처'다. 아니, '소통'이다. 세상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나 자신과의 소통.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언제나 상처를 남긴다. 사람들은 행복한 만큼 눈물 짓고, 다시 또 그만큼 행복해진다. 눈물을 흘리기에 웃음이 값진 것이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기에 화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부인이 '정말 사랑해(Te quiero mucho)'라고 건넨 말에 '나도(Yo tambien)'이라고 대답하고 마는, 결국 그녀의 손에 꼬깃꼬깃한 지폐를 쥐어주고 마는.. 그 미련함과 헤어질 데로 헤어진 몸을 이끌고 마주한 낡은 집에서 벽에 걸린 옛 사진을 발견하고는 웃고야 마는.. 그 우둔함에는 빛 바랜 것처럼 보였던 행복이 다시 반짝거리며 고개를 들었음을 발견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인간다운 영화다. 행복을 쫓아 가려는 사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씁쓸한 인생의 일면들도 볼 수 있다.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매를 맞고 난 뒤에도 '엄마한테 병문안 가도 되요?'하고 묻는 아이들의 순수함의 한 켠에는, 누군가가 평생을 모은 돈을 가지고 도망쳐 버리는 이도 있다. 우리가 누굴 욕할 수 있을까.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인데.
욱스발. 그의 행복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있기에 숨을 쉬었고 하루를 걸었고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삶은 그에게 잔인했지만, 가족이 있기에 그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에도 웃었다. 그에게 삶은 지옥이었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에게 그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펐다.
비우티풀(biutiful)(2010) -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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