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Málaga] 스페인 언어교육원에서 만난 사람들
나에게 2012년 한 해는 에라스무스, 그리고 Spanish Apartment(2002)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Spanish Apartment)>를 본 사람이라면 '에라스무스'라는 단어가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에라스무스라는 유럽 국가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단어로, 아시아계 학생들은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교환학생 파견기가 에라스무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유럽 청춘들의 천국, 스페인에서 일 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영어가 아닌 자국어를 구사하는 유럽 국가를 선택하면서, 내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언어 습득'이었다. 사실 사회과학 계열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스페인은 그다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과 기독교가 결합된 그 오묘한 문화적 콜라보레이션에 매료된 나는 연고지 하나 없는 스페인으로 왕복티켓을 끊은 채 떠났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가는 도시가 스페인 남부인지 북부인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스페인에 대한 사전 지식은 오로지 남부에 국한되어 있었고, 다행히 안달루시아 지역에 정착하였으나 마드리드나 북부로 파견 됐더라면 큰 혼란을 겪을 뻔 했다.
아프리카 대륙(하단에 위치한 모로코)와 근접한 스페인 남부 지역이 바로 안달루시아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는 정중앙에 위치하며, <꽃보다 할배>로 우리에게 친숙한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부로,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한 카탈루냐 지역에 속한다. 북부, 남부, 중부 지역은 서로 각기 다른 지역 언어를 사용한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의 '부산말' 정도에 해당하는 빠르고 억양이 쎈 지역 언어 안달루스를 사용한다. 이 사실로 인해, 나는 한국 표준어가 아닌 부산말을 구사하는 외국인처럼 스페인 사투리를 배워왔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각설하고, 스페인에서 지내는 1년의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최대 과제(언어 습득)를 해결하고자 나는 꼬박 반 년을 언어에만 할애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 부설 언어교육원의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첫 한 달은 '에라스무스' 대상 수업(명칭은 이러하지만 아시아계 학생들도 들을 수 있다.)을 듣다가 점차 심화 코스로 확대하였다. 에라스무스 수업의 경우 나보다 훨씬 어린(그러나 액면가로는 쉬이 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유럽의 많은 대학생들이 함께 들었고, 심화 코스의 경우 다양한 목적으로 스페인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수업의 동료였다. 에라스무스는 최대 20명 이상까지도 듣는 수업이지만, 심화 코스 같은 경우에는 5~6명 남짓이 함께 수업을 듣기 때문에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주변 환경이 제법 중요하다. 열의를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한편 수업이 끝나면 쌩-하니 사라지거나 쉬는 시간 내내 스페인어가 아닌 자국어(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보면 비싼 수업료 생각이 절로 난다.
그 당시에 나는 "저는 영어를 몰라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주로 어학원에서 사용하는 문장이었다. 외국인이 보이면 친절하게 영어로 말을 건네는 한국인들과 달리 스페인 사람들은 알아 듣던 말던 빠른 스페인어를 다다다 내뱉곤 해서 듣기 공부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외국인의 경우 반갑다는 듯이 영어로 말을 걸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쉬는 시간에 유창한 영어로 수다를 나누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스페인어만 사용했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에라스무스 코스를 듣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언어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서유럽 국가의 경우 문법이나 쓰는 것은 엉망진창일 지라도 듣고 말하기는 가능할 만큼 언어가 유사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동안 수업을 듣고나면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술집에서 맥주를 주문하거나 현지인들과 어울리는(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자를 꼬시거나 운동 약속을 잡는 등의 가벼운 만남 정도를 잡는) 용도의 언어가 완성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때때로 수업에 오지만 자신들이 기획했다는 에라스무스 파티를 홍보하고 사라진다. 해변이 근접한 안달루시아의 항구 도시는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열과 노는 것에 미쳐있는 유럽인들에게는 유토피아와도 다름 없다.
인텐시브 코스에서는 공부에 좀 더 열정을 가진 이들이 함께한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개인 성향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수업에 충실하다. 많은 비율의 학생들이 주로 관광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 위해서 스페인어를 배운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스페인은 관광업을 최대 산업으로 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호텔이나 관광지 등지에서 일을 하기 위함이다. 현지에 있는 미국인들은 히스패닉 인구의 비율이 점차 증가됨에 따라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러한 목적(히스패닉 인구와의 원활한 교류)에서 스페인까지 날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유럽인의 경우 스페인에 여름 휴가용 별장을 사놓고 시즌마다 휴가를 즐기러 오기 위해 언어를 배운다. 비슷한 상황으로 개인적 욕심이나 흥미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 언어를 배우는 유럽인들의 경우, 자신의 언어와 비슷한 라틴어계 유럽언어 보다는 '알파벳'부터 차이가 있는 아시아계 언어도 더불어 배우고 있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발견된다. 이들은 언어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사람을 대하거나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한 여유가 느껴져서 나의 동경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언어교육원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국적을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타 문화에 열려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공연하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아시아 문화를 하위 문화 취급하는 이들은 매 수업에 한 두 명 꼴로 존재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 인종차별이란 교육이나 시민의식의 부재로 말미암아 발현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마치 유럽(특히 백인종)인의 뼛속에 새겨져 있는 우월의식으로 인한 것처럼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언어를 배우는 데에 있어서 만큼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강의실 밖으로 나가면 파티에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의는 대부분 거절했다. 백인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백색의 유럽인종은 겉으로는 친절한 듯이 보여도, 속으로는 나를 하위 계층 쯤으로 인식하는 이들이라는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더 낮은 반으로 가야 된다고 일침을 놓던 한 교수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학생들에게 "아시아인은 다 똑같이 생겼다". "눈이 찢어지지 않은 아시아인은 모두 성형을 한 것이다" 등과 같은 아주 일반적인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일삼았다. 매 수업 또 어떤 새로운 발언들을 내뱉을까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전혀 큰 사건이 아니었다. 내가 있던 곳은 작은 도시였고, 외국인을 보면 여전히 신기하게 여기며 지들끼리 속닥대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틈만 나면 여행을 가곤 했던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면, 여행하며 다녔던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동양인을 신기하게 여기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집요하게 달라붙었고 그제야 "아 집에 왔구나"하곤 느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유럽인들 마저 그 발언 수위의 무식함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니, 사실 대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게 공포감을 심어 준 사건은 따로 있었다. 나는 매일을 이어지는 인텐시브 어학코스에서 몇몇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중 일부와는 어학원 밖에서도 자주 만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민족전쟁 발발 국가라는 이미지에 멈춰있는 아시아 변방의 국가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들 덕분에 자존심을 회복한 상태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류 등으로 인해 전에 없이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유럽 소도시에서 한국이라 하면 북한이 먼저 이야기되는 게 사실이다.) 그 때 사정상 어학코스를 중도포기하게 된 한 독일인이 수업이 끝나고 작은 티 파티를 갖자고 제의했다. 개인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진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카페로 향하는데, 두 명이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어학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한 명이 버스로 달려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떠났고, 우리끼리 소박한 뒷풀이를 가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떠나는 그녀에게 작은 카드를 선물했고, 작은 성의에도 크게 감동한 그녀 덕분에 자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먼저 떠나버린 두 명의 클래스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이 탄 버스에는 나와 안면식이 있는 한국인이 함께 타고 있었고, 그들의 재잘거림은 여과 없이 나에게 전해졌다. 처음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들이 내게 보여줬던 미소에 사실을 대입할 수 없어 번역의 오류 따위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대학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가 서로 국적이 다른 두 외국인의 영어 대화 따위를 오역할 여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리를 뒤로 한 채 떠나는 버스 안에서 그 두 명의 노란 머리 외국인은, "아시아 여자애도 초대 받았는데 우릴 부르지 않았다니 이해할 수 없어."라는 볼멘 소리를 터트렸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자신들의 뒤에 있는 2등급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어떤 종류든지 간에 그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선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고 공포감에 휩싸였다. 불행이도, 이 때의 경험은 지금까지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교육원에서 인연이 한국에까지 닿거나, 그 때의 추억과 선물들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무경험에서 오는 얄팍한 고정관념이나 편견들이 일정 부분 타파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어떠한 기회보다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같은 집을 공유한 친구들이나 친구의 친구를 건너 알게 된 사람들, 먼저 다가와 준 사람들 등 어학원 바깥에서 좋은 기억들이 생긴 것을 보면 어학원 내에서의 공감과 교류가 부족했던 것 같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가 어떠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게 남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 처음 간다고 했을 때 우리 학과에 노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뭐 배울 게 있겠니? 언어나 좀 터득해와라." 그리고 그 말을 따라 언어를 배우러 간 나는 언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p
'여행의 탈을 쓴 > 유럽에서 사계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Bamberg] 유럽여행의 꽃, 인터레일 vs. 유레일 (2) | 2015.07.21 |
---|---|
[Salzburg] 클래식의 도시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0) | 2015.07.21 |
[Budapest] 배낭여행 중에 있던 하루의 호화여행 (0) | 2015.07.15 |
[Tangier] 공포에 찌든 이방인을 바라보던 눈 (0) | 2015.07.09 |
[Warsaw] 카우치서퍼들의 천국과도 같던 도시 (0) | 2015.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