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Salzburg] 클래식의 도시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2012-08-14
나의 유럽 배낭여행은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점점 동유럽을 향하는 루트로 짜여 있었다. 중간에 영국이 끼어 있긴 했지만, 독일여행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오스트리아였다. 음악이란 BGM, 가사를 알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틀어놓고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로만 생각하는 나에게 음악적 소양이란 먼지 한 톨처럼 작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스트리아의 첫 이미지는 '클래식(음악)의 도시'였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개인적으로 빵을 좋아하진 않지만 유럽에서는 선택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나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들로, 머핀이나 크로와상, 연어 샌드위치를 샀다. 두 번째 사진에 있는 건 딱딱한 웨하스 느낌의 과자인데, 크기가 성인 여자 얼굴 일부를 가릴 정도로 크다. 신기해서 샀는데 맛은 심심했다.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아주 작은 도시지만 독일하고 근접해 있어서 독일여행을 간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분위기는 상당히 한적하고 평화로운데, 어딜가나 클래식 음악이 작게 흐르고 있어서 고전풍 유럽 영화의 배경 같은 느낌도 든다.
숙소 근처에 있던 동상. 우리 숙소가 위치한 곳은 도심하고는 터널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끌고 하는 여행이라 숙소를 찾기 전까지는 주변 경관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막상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면서 주변의 사소한 것 하나도 아름다워보이는 경지에 도달한다.
터널로는 사람들도 지나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레일 버스)도 다닌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동안 이 터널을 여러 번 지나다녔다. 터널에서 나오자마자 아래 사진에 있는 커다란 분수대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제법 유명한 모양인 지 여행 전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본 기억이 있어 낯이 익었다.
잘츠부르크 도심을 지나다니면서 종종 마주쳤던 마차. 스페인 관광지에서 마차를 마주치면 말의 분변 냄새가 엄청났는데, 잘츠부르크에서는 조금 덜 했다. 타 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무진장 더운 데다가 말 위에 올라타는 게 아니라서 패스.
이번에는 흑마. 실제로 보면 마차의 바퀴가 큰 지라 다소 위압감이 있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를 한 눈에 올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성. (편의상 성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돈을 내면 한 번에 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 있고, 걸어서도 오르는데 큰 무리가 없다. 잘츠부르크에 간다면 반드시 올라야 할 곳. 경관이 정말 아름답다.
거리에서 대형 체스를 두는 아저씨들. 체스라고는 외국인 친구들한테 장기 설명할 때 '동양식 체스'라고 말할 때 언급한 게 전부인데 실제로 보니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장기하고 매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제대로 배워봐야 겠다. 거리에서 이런 대형 체스를 즐기는 사람들도 멋지지만, 게임판을 거리로 가져와도 용인해주는 행인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유럽에서 흔히 마주치는 길거리 악사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버스킹'이라는 이름으로 홍대나 인사동 등지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유럽이라고 하면 원조격이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악사의 연주가 훌륭하면 경찰들이 와서 제재를 가해도 행인들이 이를 막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연주를 감상하는 여유는 있어도 그 연주를 칭찬하고 호응하는 적극성은 없다는 것.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크게 호응하고 박수를 쳐준다. 정작 동전을 던져주는 것은 현지인이지만.
내가 한국에서의 버스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드는 것도 사실은 그 '동전'이다. 유럽에서는 2유로 동전 하나로도 생필품(우유나 기름, 밀가루 따위나 과일까지도. 그리고 일부 가격대가 낮은 소모품도 가능함.)을 구입할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동전으로는 어림도 없다. 게다가 음악을 듣고 동전 몇 개를 던지기엔, 아무리 거리의 악사라지만 음악가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을까 우려된다. 그러면 지폐를 던져주어야 하는데 지폐의 특성상 먼 거리에서 던질 수가 없으니 연주하는 사람 가까이까지 다가가야 하고, 종잇돈은 왠지 모르게 지출이 크게 느껴진다. 유럽에서는 음악을 자세히 듣지 않은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가볍게 동전을 던져준다. 화폐의 가치와 물가의 차이 때문에, 그게 한국에서 가능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모차르트 초콜렛.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초콜렛은 사실 벨기에와 스위스에서 섭섭하지 않게 먹은 터라 그 좋다는 초콜렛에는 시선이 잘 가지 않았다. 그냥 모양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더니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기념품 중 하나라기에 놀랐다.
SPA브랜드 매장 같은 의류 상점에서 전통의상 느낌의 옷들을 팔고 있는 게 신기했다. 저 옷 입고 우유를 따라 마시면 정말 신선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음.
잘츠부르크에서 아쉬웠던 점 하나. 하늘을 워낙 좋아하고 많이 찍는 사람인데 얼마나 많은 선들이 엮여 있는 지, 하늘에 금이 여러 번 그어졌다. 교통 때문인지 전기 공급 때문인지. 모든 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리 위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선들은 클래식의 도시 잘츠부르크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미라벨 궁전으로 향했다. 여행 계획이 촘촘하지 않아도 워낙 도시가 작기 때문에 걸어서도 충분히 관광이 가능하다. 천천히 걸어서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돌아봤는데, 여름에 가면 정말 아름다운 궁전임에 틀림 없었다. 꽃이 만개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정원의 모습이 잘츠부르크의 인상과 딱 어울렸다. 두 팔 다리를 쭉 편 동상 앞에서 동상을 따라하며 사진을 남겼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다가 우리가 자리를 뜨니 똑같은 포즈를 하고 사진을 남겼다. 영화처럼 예쁜 사진과 셀카를 많이 남기지 못해서 매번 동상을 따라하며 사진을 찍었다.
앞선 사진에 보았던 곳으로 올라가면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레지덴츠 궁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민트색 지붕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위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해서 일단 내려가 쉰 뒤 해가 질 때쯤 다시 올라오기로 했다.
낮에 지나쳐왔던 레지덴츠광장으로 돌아왔다. 거리의 악사가 노래를 부르던 좁은 문을 지나서, 성당 쪽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달간 축적한 여독이 풀리진 않겠지만 멍하니 앉아서 귀로는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듣고, 눈으로는 사람들을 느리게 쫓으면서, 그래도 타지라는 긴장감 때문에 완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몸을 벤치에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함께 여행 중인 친구는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를 샀다며 넣어두었던 엽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해가 지고 다시 경관을 보기 위해 높은 곳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떠났을 때는 무조건 높은 곳으로 갈수록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잘츠부르크는 동화 속의 도시처럼 건물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인상을 주었다. 하늘의 모습은 붉은 노을과 저녁 하늘이 뒤섞인 아름다운 색깔에 도시의 심장을 따라 흐르는 잘자흐 강의 모습도 보였다.
여행 중이던 여름에는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중심부, 대성당 앞에서 오페라/뮤지컬 상영이 있었다. 낮에는 한켠에서 체스게임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다. 월드컵 당시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볼 때와 같이 혹은 한강공원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영화상영 이벤트처럼 클래식 공연과 뮤지컬을 무료로 상영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관람했다.
예전에 학과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중산층의 경계는 숫자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경제력이 아닌 얼마나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음악과 가까이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부럽고, 그 여유가 어디에서 올 수 있는 지 생각이 많아졌다. '여유'라는 단어만큼 멀어진 것도 없는 현대 사회에서, 잘츠부르크의 하루는 무엇보다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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