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Tangier] 공포에 찌든 이방인을 바라보던 눈
2012-04-20
30살이 되기전에 각 대륙별로 1년 이상 생활해 보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내가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한 것이 바로 모로코였다. 모로코는 유럽은 아니지만, 2012년 유럽 체류 중 이루어진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행기를 남긴다. 모로코는 스페인에서 페리를 타고 (기억 상으로는 약) 1시간 20여 분 가량만 이동하면 도착하는 아프리카 대륙 북단에 위치한 나라다. 인구의 약 99% 가량이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모로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얼렁뚱땅 입국 심사를 하고 난 뒤 관광객들 사이에 파묻혀 모로코 땅을 밟았다. 우연히 마주친 스페인 할아버지와 안달루스(Andaluz)로 몇 마디 주고 받고 나니, 배가 내린 항구 앞에는 물정 모르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는 모로코의 업자(?)들이 즐비했다. 여행 만렙인 스페인 할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여유롭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업자들을 지나쳤지만, 어린 동양여자라는 좋은 먹잇감을 그들이 놓칠 리 없었다. 모로코 여행에 대한 간단한 팁은 커녕 호스텔 예약 따위 한 적이 없는 우리는 이름 모를 모로코 남자에게 이끌려 구시가지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한 기억이었다. 모로코에서 느낀 공포는 사실 시선이 주는 공포였다. 한 폴란드 여자는 "모로코에선 모든 사람들이 다 내 머리카락(금발)을 만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낯선 외양의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참으로 정직했다. 흘깃 훔쳐보듯 빠르게 훑는 것도, 우리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굴리는 것도 아니었다. 까만 눈동자들은 집요하게 우리를 쫓아다녔고 어느 거리를 가든 좁은 골목에 바글바글 위치한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 속에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든지 제시만 해라, 그럼 호텔로 안내해주겠다."던 모로코 남자는 10유로라는 우리의 말에 구시가지를 한참 들어가 한 낡은 호텔 안으로 우릴 인도했다. 외국어는 전혀 못하는 것 같은 주인장이 우리에게 방을 배정해줄 때만 해도 그 남자의 역할은 끝난 줄 알았지만, 저녁식사부터 모로코 양탄자 가게까지 "살 때까지!" 풀코스로 준비되어 있었다.
자그마치 12유로를 주고 먹은 모로코의 메뉴델디아(Menú del día). 아프리카의 건조하고 뜨거운 기온을 닮은 것처럼 수분이 별로 없던 주 메뉴. 스프 뒤에 나온 음식은 디저트에 가까울 정도로 달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모로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맛은 순전히 저 음식 하나 때문이다. 후식으로 나온 슬라이스 된 귤은 계피가루를 뿌려준다. 나름 전식-본식-후식으로 구성된 완성도 있는 한 끼.
양탄자 가게에서 끊임없는 호객행위에도 우리는 결국 지갑을 열지 않았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양탄자를 불태울 것 같던 주인은 가게 꼭대기로 우릴 불렀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두려움이 커졌지만 결국 마주한 건 탕헤르 구시가지가 한 눈에 보이던 경치. 이 때만 해도 우리가 있는 곳이 구시가지인 줄은 몰랐다.
준비된 코스(?)를 다 돌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주인장은 있지도 않았고 미리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왜 이곳에 있는가'하는 물음에 빠져서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창 밖으로는 요란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소리인 지 새가 우는 소리인 지 요란법석을 떨며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도 커텐 밖을 내다보기가 어찌나 무서운 지.
핸드폰은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산 속에 조난 당한 심정이 이러할까. 청결은 기대하기 힘든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똑, 똑. 누가 있는 지 확인하는 듯이 느리게. 밀당하던 문소리가 끝나고 잠궈둔 문을 열려는 덜컥 소리가 두 어번. 함께 간 친구는 이미 잠들었는데 나 혼자 오들오들 떨었다. 문 밖에 있는 사람이 제발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세요. 빌면서.
아침이 밝고 해가 비추니 훨씬 마음이 편했다. 지난 밤에는 나오지도 못했던 방 밖으로 나와 화장실도 가고, 부지런히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제 호객꾼에게 끌려다녔던 길을 떠올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구시가지를 빠져 나왔다. 구시가지는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달동네처럼 지대가 높았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을 모른 척하며 구시가지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 내 머리카락이나 가방끈 따위를 잡아챌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언(無言)의 시선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지, 탕헤르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구시가지 밖은 넓은 도로에 건물들을 신축하고 있는 신시가지가 마주보고 있었다. 맥도날드나 피자헛 등 눈에 익은 익숙한 브랜드를 마주칠 수 있다. 이제 시선들에 모자라 아저씨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브로큰 잉글리쉬(broken english)로 건네는 추파가 오히려 무섭기 보단 우스워 마음이 편했다.
평양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런 모습일 거 같은 착각이 들던 탕헤르의 신시가지의 모습. 한켠에서는 여전히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긴 천을 두른 것 같은 구시가지 사람들과 다르게 신시가지에선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옷을 입고 있다.
모로코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역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깨끗하고 지은 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 역사의 모습. 탕헤르에서 이동하여 현지 사람을 만났다. 함께 여행을 간 친구가 미리 연락을 해 둔 모로코 사람인데, 모로코 밖의 삶에 상당히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을 갈 수 없는 본인의 처지 때문에 외국인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여행기를 무용담처럼 듣길 원했다. 모로코의 첫인상에 질려버린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워했다.
모로코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묘한 위화감 때문인지, 기차에서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오던 한 남자 때문인지 몹시도 피곤한 여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의 사진에는 볼에 점이 없다는 이유로 입국이 불허될 위기에 처했을 때 등골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수능시험을 위해 찍어둔 사진은 사진기사 아저씨가 불필요한 친절을 발휘해서 얼굴의 점을 모두 지워주었다. 입국심사대의 직원은 "얼굴에 있는 점이 여기 사진에는 없으니,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하다가 "그러니까 내가 점을 찍어줄게."라며 볼펜을 사진 위에 가져다댔다.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식은 땀만 뻘뻘 흘리는 내게 도장을 찍어주면서 그 직원은 환하게 웃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때 그 직원의 인중을 주먹으로 때려줬을 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안전을 최고로 중시하는 사람이다. 혼자 유럽 여행을 할 때는 해가 떨어지면 숙소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았고, 숙소가 먼저 예약되지 않으면 여행을 떠나기 꺼려하는 안전제일주의였다. 여름에 여행할 때는 귀중품을 복대에 차고 다녔고, 여권은 늘 자물쇠가 채워진 가방 안에 두고 다녔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늘 빠르게 걸었다. 동행자가 없으면 길거리에서 3초 이상 서 있지 않았다. 그런 내게 모로코 여행은 큰 일탈이었고, 돌이켜 보면 이색적인 경험이었지만 그 때처럼 준비 없는 여행은 다신 하고 싶지 않다.
모로코와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너무 큰 두려움을 가진 것은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나의 무지(無知)에서 발현된 것이고, 그러한 무지는 한 나라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 속에는 타 문화를 향한 동경이 담겨 있었고, 집 안에서도 머리카락을 가린 여자들은 처음보는 이방인 옆에도 바짝 살을 붙이고 앉으며 말을 건네고자 하는 적극성이 있기도 했다. 인정한다. 나는 그러한 괴리 속에서 그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탕헤르에서 이동해 온 도시에서, 우리는 전화기를 빌리기 위해 공원에 모인 소녀들에게 다가갔다. 호텔에서도, 공중전화도 사용법을 몰라 헤매던 우리에게 선뜻 전화기를 빌려준 페스(Fès)의 소녀들은 상대방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어줬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만남의 광장 정도로 통하는 것 같았던 맥도날드 앞 잔디밭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다함께 사진을 남겼고 페이스북 친구가 됐다. 나보다 어린 것 같았던 그녀가 후에 결혼 사진을 올리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로코 여행 내내 씻을 수 없던 위화감이 다시 느껴졌지만 사진 속의 그녀가 너무도 행복해보여서 마음이 복잡했다.
이슬람 문화권의 삶의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인생(人生)의 하나의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모양이다. 한낱 여행객에 지나지 않는 나는 이것을 '경험'이라는 말로 정리한 채 나의 여행기의 한 단락으로 남겨둔다지만, 여전히 그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삶이란 어떤 무게일까. 모로코 여행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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