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Valencia] 자전거로 내달리는 음식과 과학의 도시
2012-07-10/11
빠에야(Paella)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발렌시아는 확실히 휴양지 느낌이 강했다. 건물이 큼직큼직하고 쾌적해서 계획도시의 외양을 갖추고 있었는데, 대형 박물관이나 관광지 따위가 없어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내게는 스페인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도시 중 하나다.
발렌시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근사한 건축물들. 발렌시아는 '발렌시아노'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표준말인 까스떼야노(Castellano) 외에도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사용하는 안달루스(Andaluz: 안달루스는 표기법은 까스떼야노와 거의 유사하므로 비교적 사투리에 가깝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까딸루냐 지역에서 사용하는 까딸란(catalán),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사용하는 가예고(Gallego), 발렌시아 지방에서 사용하는 발렌시아노(Valenciano) 등 각 지방마다 본연의 언어를 사용한다. 지방색이 뚜렷한 것은 언어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방어는 때로 같은 '스페인어'이지만 서로 대화가 불가할 정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관광지의 경우는 까스떼야노, 지방어, 영어 세 언어를 모두 표기한다.
발렌시아의 주목할 만한 관광지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La 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라는 명칭을 가진 거대한 테마공간이다. 각종 박물관과 3D 상영관, 아쿠아리움 등이 있는 공간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더운 날씨에 걸어서 이동하기 고달플까봐 자전거를 대여했더니, 그게 바로 신의 한수였다.
두발 자전거로 씽씽 내달리니 바람도 시원하고, 공간이 워낙 넓고 평평한지라 자전거 도로가 부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로 이동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일부 공간에 한해서는 자전거 탑승이 불가한데, 대여한 자전거를 분실할 염려를 할 필요 없이 주차장 안에 마련된 자전거 주차공간을 사용하면 된다.
이 날 우리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와 목을 축여준 세븐업! :)
공간 구성은 아쿠아리움과 돌고래 공연, 각종 수중생물들을 볼 수 있는 오션 섹션(정확한 이름은 아님)과 3D 영상관을 비롯하여 과학관(인체 구성도나 신기한 체험형 과학전시물 등이 있다)이 조성된 사이언스 섹션이 있다. 편의상 이렇게 나눴지만 크게 보면 과학, 작게 보면 물리나 생물과 관련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간의 이름 자체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에 가장 가까운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각종 수중생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치형 수조로 만들어진 터널 구간. 머리 위로 상어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 맞춰서 돌고래 공연장으로 왔다. 어렸을 때 한 번 쯤은 봤을법 한데 돌고래 공연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어서 이 날이 거의 인생 최초의 돌고래 공연을 보는 날이었다. 위트있는 구성이라기 보다는 상당한 기교 중심의 공연이었다. 돌고래 위로 올라탄 채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는 것이라던지 높은 곳에 있는 공을 치는 것이라던지. (오키나와에서도 돌고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오키나와의 구성은 상당히 유머 중심이었다. 돌고래가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 대부분의 구성. 약간의 문화차이 같다.)
공연을 하기 전에 잠깐 바람잡이 시간. 아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박수를 받았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La 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를 둘러본 날에 우리는 한국인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장기간 휴가를 내고 어린 자식들과 유럽 여행 중이라는 부부는 과학관에서 잠시 아이들과 어울려준 우리가 고맙다면서 저녁을 사줬다. 발렌시아에서 유명하다는 빠에야 전문점에서 저녁을 얻어 먹었는데, 우리 둘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귀한 만찬이었다. (스페인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주문을 맡았는데, 한 사람 당 1유로나 했던 물까지 주문한 점은 지금도 죄송스럽다..ㅜㅜ 유럽에서는 식당에서도 물을 판매하는데, 공짜 물을 달라고 하면 수돗물을 따라준다. 그러나 오래된 상수도 시스템을 가진 유럽에서 수돗물은 녹물인 경우가 많아 추천하지 않는다.)
이 날의 귀한 저녁식사에서 우리는 빠에야 본고장의 빠에야를 맛볼 수 있었다. 빠에야 네그라(먹물 빠에야)와 빠에야 믹스따(해물과 고기를 섞어 만든 것으로 토끼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를 먹었는데 정말 일품이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먹었던 빠에야를, 어린 아이들은 물렸는지 먹지도 않으며 투정을 부렸다. 빠에야는 싫고 라면이 먹고 싶단다ㅜㅜ 세상에나. 이 귀한 음식을 언제 또 먹을 줄 알고.
어린 아이들 둘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부모님의 수고야 대단하지만, 여행의 참의미를 알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린 것도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여행이기에.. 나 또한 많은 곳을 다녔지만 그 공간의 의미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겠지. 물론 어린 나이에 많은 문화를 경험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긍정적 영향이 될 것이다. 더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타 문화에 대한 수용도 높아질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나의 친 언니에게 "나중에 조카가 생기면 어린이용 세계사 책을 사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읽고 나면 내가 전부 경비를 대서 세계여행을 시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적 있다. :p
아이와의 여행에 대한 고민을 안고 발렌시아의 이튿날, 발렌시아 중앙시장을 찾았다. 발렌시아는 빠에야 만큼이나 품질 좋은 과일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오렌지가 일품이다.
건축적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시장의 모습.
Para zumo(주스를 위한) 오렌지! 생으로 갈아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 정말이지 최고.
말린 과일들. 스페인은 과일과 채소 등 청과물 천국이다.
이 날 발렌시아 중앙시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을 보았다. 센트 동전을 떨어뜨려 주우려던 순간 먼저 손을 뻗어 동전을 주워준, 생선가게 총각이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할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는데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느낀 감정만은 생생하다. 너무 잘 생겨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눈코입 달리면 다 비슷해 보이는 내 눈에 외모로 뇌리에 박힌 사람은 그 사람이 유일했다. 그런 의미로 여성분들은 발렌시아에 가시면 중앙시장을 반드시 들리세요.
중앙시장을 나와 시청 건물이 있는 넓은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주변에는 꽃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한데, 햇살이 좋으니 꽃도 형형색색 아름답다. 발렌시아는 정말 아름다운 공간이다. 휴양지의 느낌이 강한데 다른 스페인 도시들에 비해 건물들이 크고 깨끗하면서, 명품샵도 많다. 대규모 테마공간과 맛집, 거기에 바다까지 가까이 있는 곳이라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볼거리에 치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발렌시아를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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