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Osaka_01] 츠루하시, 국제시장의 재일코리안
2014-05-24
초여름 날씨인 5월 말에 오사카에 다녀왔다. 내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단편적인 이미지이지만 여러 얼굴을 지닌 나라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로 부정적인 인상이였다. 근현대사를 필수 과목으로 배우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문과생 시절을 보낸 나에게 일본이란 영토분쟁과 식민지 과거사로 매여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 본 일본은 기존의 생각들을 바꿔놓을 만큼 평범하고 무난한 곳이었다. 국가에 대해서 만큼은 경험치가 쌓일수록, 그 성질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외여행에 앞서 한 국가의 첫인상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공항이다. 터미널이 구분되어 있다면 공항 셔틀버스를 포함한 각종 제반시설이, 관광객을 맞이하는 첫 얼굴이 된다. 오사카와 인천공항을 오가는 저가항공의 정기 노선은 한 무더기의 한국인들을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려놓았다. 오사카의 하늘은 청명하게 맑았고, 빨간 배낭을 짊어진 나는 츠루하시까지 바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전철을 타고 이동하며 마주하는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웃음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 음습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도시는 결벽기 마저 느껴지는, 그러나 형형색색의 조악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대중교통이며 고층 건물 등 광고판을 죄다 채우고 있어 키치(kitch)하기 짝이 없는 오사카였다.
현지에서 수학 중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츠루하시의 국제시장 부근에 도착했다. 일본 여행의 첫 시작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과 한국의 분기점에 있는 한인타운(Korea Town)이었다. 그 중에서도 츠루하시 전철 역과 가장 인접하여 위치한 국제시장(International Market)의 초입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츠루하시의 국제시장은 여러 호선이 위치하는 곳으로, 교통의 요지로 여겨진다. 600여 개의 상가가 군집하고 있으며 그 상가의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국제시장의 상인 비율을 보면 올드커머(oldcomer)가 40%, 뉴커머(newcomer)가 60% 가량으로 뉴커머가 조금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러한 분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내 재일코리안의 이주배경에 대하여 어느정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전쟁과 식민지배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조선인이 일본으로 이주, 정착한 경우를 올드커머(oldcomer)라고 지칭한다. 당시에는 일본과 제주 사이에 배편이 있어 제주 출신의 이주민이 다수였다. 이들은 이주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값싼 비용을 지불 받은 채 일하거나, 평탄하지 못한 환경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뉴커머(newcomer)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18세기 후반에 일본에 정착한 재일코리언을 분류하는 말로 쓰인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환경에서, 비즈니스(business)를 목적으로 이주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남한과 일본 간의 협정으로서 재일코리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남한 국적을 선택할 것'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이를 기점으로 나뉜 올드/뉴커머(old/newcomer)들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는 둘의 관계나 상황도 변화를 겪는다.
국제시장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코리아타운의 경우 올드커머(oldcomer)가 정착하며 발전시킨 곳으로, 본래 거주지인 동시에 상점가였다. 때문에 코리아타운 대부분의 상점들은 낮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이지만 저녁이 되면 일반 가정집의 역할을 하는 주상복합 형태를 띠었다. 코리아타운의 폐쇄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국제시장은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상가들이 많다. 6시 이후에는 전문식당에서 불고기 향이 흘러나오고, 잠들지 않으며 손님을 유혹한다. 전문 식당가와 상점이 즐비한 국제시장은 뉴커머(newcomer)가 진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국제시장은 본래 군수물품을 취급하는 암시장 형태에서 발전한 것이다. 사실상 자연적으로 생성된 시장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츠루하시의 거대 시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재일코리안 관련 서적을 구매할 수 있는 서점이다. 현금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국제시장에서는 다양한 한국관련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재래시장을 연상케하는 한복 상점은 한복을 한국에서 조달하여 판매하고 있다. 재일코리안 1세대들의 경우, 직접 손으로 만든 한복을 판매하였으나 현대에 와서 '해외 배송' 식으로 변한 것이다. 한복의 경우, 재일코리안 사이에 종종 열리는 축제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요가 유지된다. 김치는 재일코리안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나름 인기가 있어서, 일본 각지로 택배 판매되고 있다. 국제시장 내에 상점들은 한국인의 성을 딴 것이 많다.
생선 등 수산물은 매일 신선한 상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새벽열차를 타고 온다. 시장은 나름의 노하우를 통해 유지되고 있지만, 치안 문제나 가품 판매로 인한 상품의 질 하락 등으로 그 부정적 면모가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 시장 내에 구식 2층 건물이 밀집한 구역에 있다. 건물의 형태 때문에 화재가 났을 시에 피해가 컸다. 사진은 화재 피해로 인해 세상을 떠난 어린 아이들을 위한 불상의 모습이다. 추모의 의미다.
오사카의 국제시장을 찾게 된다면 국제시장의 맛집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김치 샌드위치라는 독특한 메뉴를 팔지만 그 맛이 제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감히 상상하기는 어려워서 시간적 여유가 받쳐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시식해보진 않았다. 장인 정신이 깃든 일본답게, 이 곳도 동일한 스태프가 오래도록 함께 일했다고 한다.
국제시장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보면, 과거 파출소 건물로 쓰였던 독특한 건물이 있다. 파출소가 운영될 당시에 이 곳에는 거의 매일같이 재일코리안이 대량 구속되었다고 한다. 크고 작은 죄목으로, 또는 억울한 오해로 인해 말이다. 때문에 가족들의 읍소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는 이사를 했지만 파놉티콘 형태의 건물은 위압감을 준다.
파출소 앞 쪽에 위치한 것은 재일코리안 노년층을 위한 복지센터다. 한국과 일본은 문화나 생활상에 있어 비교적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주한 재일코리안들도 타국에 정착하여 적응하며 오랜 세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어나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나 망각 증세가 돌연 일어난다. 이로 인해 노년층의 재일코리안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재일코리안의 후원을 받아 '재일코리안 1세를 위한 노년층 복지센터'가 건립된 것이다. 이 곳을 찾았을 때 한 노인 분이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락 없는 일본 도시의 노인처럼 보이던 할머니의 굽은 등이 무언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복지센터와 몇 개의 상가들을 지나 낡은 미용실을 끼고 왼쪽으로 꺾으면, 커다란 도로를 마주하게 된다. 매출이 그다지 좋지 않아 문을 굳게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오래된 미용실만은 빛 바랜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미용실을 뒤로 한 채 서면 보이는 널찍한 도로는, 전시(전시)에 군수물자 운반을 위해 도로 위에 있던 집을 밀어버린(철거한) 결과물이다. 그 도로를 지나면 코리아타운으로 연결된다.
'여행의 탈을 쓴 > 본 투비 아시안' 카테고리의 다른 글
[Okinawa_02] 3박4일 관광 : 북부-핵심 관광지 투어 (0) | 2015.07.06 |
---|---|
[Okinawa_01] 3박4일 관광 : 나하 중심부-국제거리 (0) | 2015.07.06 |
[Osaka_04] 오타쿠의 성지 덴덴타운과 헤이트스피치 (0) | 2015.06.22 |
[Osaka_03] 재일코리안의 종교와 삶을 말하다. (0) | 2015.06.18 |
[Osaka_02] 코리아타운과 코리아NGO센터&민족학교 (0) | 2015.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