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aka_03] 재일코리안의 종교와 삶을 말하다.

리아타운을 벗어나면 일반 가정집들이 모습을 보이지만 그 면면에서 재일코리안의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저 마주한 커다란 건물은 '관음사'라는 절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익숙한 절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한국어로 된 이름표에서 분명한 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절의 외양 뿐만이 아닌데, 이 곳에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스님이 하나의 직업으로 세습되는 경향을 지닌다.




절의 일부에는 납골당이 자리하고 있다. 납골당에는 수많은 재일코리안의 묘가 안장되어있다. 그간 재일코리안 1세들의 경우 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 장례와 매장을 치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할애하게 되므로 이후 살림에도 여파가 남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2~3세로 넘어오고 나서는, 한국이 아닌 공동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교신자를 위한 절이 있듯이, 멀지 않은 곳에 한국교회도 위치해있다. 일본 인구 중에 약 2% 가량만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는 유일신에 대한 높은 신앙심을 특징으로 들 수 있는데, 이것이 일본사회의 특성과 그다지 결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일본에는 다양한 미신과 수 천의 신들이 존재하며(그 중에는 잡신도 상당하다.) 생활에 일부로서 미신이 자리잡고 있으나 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적 행위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러나 교회가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면도 있다. 뉴커머들이 주로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는 1~2층을 지역사회에 기증하여 탁아소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속에 어린 아이는 할머니와 어울려 공놀이를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는 무료 점심을 대접하는 등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저소득 계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조선족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을 배려하여 다문화적 특성을 지닌다.





교는 때때로 지역사회를 결집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에게 심적 안정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어려운 시절에 타국으로 이주한 재일코리안 1세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아래에 보이는 히라노 강에 남아있다.



사진의 히라노 강은 철을 싣고 운반하기 위해 조성된 운하다. 1923년에 제주인이 동원되어 공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값싼 노동력이 다량으로 필요했던 일본의 실정에 따라,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한 제주의 청년들이 이주하게 된 것이다. 당시 운하조성을 위한 공사에 동원된 이주민들은 공사 중 떨어진 철을 모아서 생계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사 당시에 노동 강도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은 '처리가 곤란해져' 히라노 강과 멀지 않은 곳에 대거 매장되었고, 그 자리에는 현재 대형마트가 생긴 상태다.


디 이 지역의 명칭은 '이카이노'(그 뜻이 멧돼지라고 들었는데 정확하지 않다.)라고 불리우는 심각한 습지 지역이었다. 때문에 주거 환경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낮은 가격으로 분양을 해도 잘 팔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형편이 좋지 않은 한인 이주민들의 정착지가 되었고, 그 이후에 시장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코리아타운의 탄생 배경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현재는 '이카이노'라는 지역명은 행정상에서 사라지고 '이코노쿠'라고 불린다고 한다. 일본어에 유창하지 못하여 지명에 대한 것은 확신할 수 없지만, '이카이노'라는 단어가 재일코리안에게는 상처인 동시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인 듯 하다.


이버에 이카이노라는 말을 검색해보니 그 단어 뜻은 찾지 못했지만 관련 서적이 나왔다. 저자 원수일이 출간한 '이카이노 이야기'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이다. 저자는 제주출신의 한국국적 재일코리안 2세 소설가라고 한다.


 이카이노 이야기

제주 출신 어머니들의 억척스런 모습과 이에 수반되는 삶의 애환에 얽힌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재일동포 2세의 방황하는 청춘상과 정체성 문제로 인한 고뇌, 1세와의 가치관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 모습도 진중하게 그려진다. 유년기와 소년기에 각인된 이카이노 풍경, 그 자체를 제주 특유의 방언과 익살로 담아내는 리얼리티가 작품집의 생명이다.


제주일보, "재일 한국인` 2세 원수일씨 ‘이카이노 이야기’ 한국어판 출간", 2007.01.09 참고


리아타운을 비롯한 오사카 한인사회에 대한 짧은 견해는 오사카 여행의 첫 날 동안 단편적이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었던 답사의 결과물이다. 한류로 인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전에 없이 문화콘텐츠에 대한 산업적 개발 욕구가 샘솟는 지금, 재외 한인이 일구어놓은 코리아타운이 문화교류의 교두보로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코리아타운의 생성 배경과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진중한 고찰은 부재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재외한인은 한국에 그 민족적 뿌리를 두고 있으나, 생활방식과 문화는 이주한 국가의 것을 습득한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살 수도 없으며, 이주한 국가에서 평생을 그 국가의 일환으로 생활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재외한인의 이주 동기를 단순히 경제적 차원이나 산업적 논리에서 '생계를 위한 이주'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가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해외 이주민들의 사례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정부의 적극 장려에 힘 입어 브라질 등 남미 국가로 대거 이민을 갔던 남미 지역 일계인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90년대 이후 일본 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귀환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본문화와 일본식 삶에 적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다시 남미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재외일본인 이주자들을 그저 노동력의 일환으로만 취급하고 대했던 일본 정부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본 사회에서 재일코리안이 경험하는 차별과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출범했던 코리아NGO센터는 이제 일본 내 소수자인 다문화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앞서 말한 남미 지역 일계인에서부터 전쟁 당시 중국에 잔류되었던 일본 고아, 동남아시아 지역에 머물다 일본에 귀환한 사람들(특히 윤락가의 여성들) 등이 그 대상이다. 이것은 해외 이주민들의 삶과 인권에 대한 문제가 두 국가간의 정치적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 혼돈과 실질적 어려움에 대한 인류 공통의 관심사라는 점을 시사한다. 재일코리안을 비롯하여 재외한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할 때다.





※ 오사카 여행기 1~3편의 내용은 답사에 함께해 주신 손미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더불어 본 포스팅에서는 일본 내 한국 이주민(1세부터 현재까지)를 지칭하는 단어로 '재일코리안'을 사용하였습니다. 포스팅과 관련된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손미경 선생님의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문화 발신지로서의 오사카 이쿠노쿠 코리아타운 = Ikonoku's Koreatown in Osaka as a home of Korean Culture」(2010) - 고정자 선생님 공동저자

「‘문화플랫폼'으로서 도쿄 오사카 코리아타운 연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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