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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ka_04] 오타쿠의 성지 덴덴타운과 헤이트스피치
2014-05-25
츠루하시의 코리아타운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오사카 번화가로 향했다. 일본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동했다. 나에게 여행이라고 하면 내가 읽기는 커녕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의 활자에 둘러쌓여서 막연한 두려움 더하기 설렘의 감정을 느낄 때 가장 재밌다. 일본어는 학창시절 때에도 배운 적 없는 전혀 먼 나라 언어기 때문에(비전타령하며 항상 중국어를 배웠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어가 비전있는 언어인 건 마찬가지인데 그 10년 동안 내 중국어는 전혀 늘지 않았다.) 커다란 일본어 문자들이 자리잡은 번화가야 말로 흥미를 돋웠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 번화가의 전형적인 모습.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이 대형 광고판에 걸려 있고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일본 가정집이나 도시 바깥의 외양은 '음습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무채색이지만, 번화가의 모습 만큼은 생동적이다.
가게마다 걸려있는 입체 간판이 인상적이다. 3D로 광고판을 만들다니, 조금은 괴기스럽기도 하고 유쾌한 만화적 생각 같음.
앞선 포스팅에서 여행은 식도락이다!라고 적은 말이 무색하게 여행하면서 이것저것 사먹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결국 제자리걸음 ㅜㅜ 오사카에 간 김에 유명하다는 타코야끼와 푸딩을 먹어봄. 타꼬야끼는 안이 설익은 것처럼 부드러운 게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소스가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다. 그러나 푸딩은 음.. 쓰다.
돈키호테(대형 잡화점)를 지나서 덴덴타운으로 향했다. 덴덴타운의 덴은 한자를 보니 電(번개 전)이었다. 일본 여행객들에게는 '오타쿠의 성지'로 유명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각종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우리로 따지면 용산 전자상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괜히 오타쿠의 성지라고 이름난 것은 아니다. 전자상가가 밀집한 곳을 지나 애니메이션 관련 상가로 향하니 그 중간에 메이드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적 있는 '메이드카페'의 홍보다. 그다지 인기는 좋지 않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침. 지인에게 물어보니 서빙을 부탁하고픈 아리따운 메이드가 없다고 한다.
메이드복을 입은 '삐끼소녀'들을 지나치고 나니 각종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들이 있다. 아래는 그나마 아는 만화 + 캐릭터 별로 악세사리를 만든 게 예뻐서 찰칵. 캐릭터에 맞춰 쥬얼리 상품을 내 놓는 건 디즈니가 잘하던 짓인데, 원조가 누구일까.
최대 규모라는 만화상점. 만화는 일찍이 '꾸러기수비대' 이후로 웹툰도 안 보고 사는 나에게는 신세계. 사진이 휑하니 썰렁한 이유는 오타쿠 여러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람 없는 곳만 골라 찍어서 그렇다. ^^;
신기한 점은 가게 내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여 동호회 모임하듯이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는 점과 보기 민망한 만화책들도 보란듯이 나와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만큼 피규어라던지 고가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은 없었다. 유희왕 카드 같은 카드세트가 있었는데 그게 고가라고 했다. 레어(rare)한 것은 상당한 금액에 팔리는 모양. 잡다한 아이템(?) 같은 경우는 떨이팔이하 듯 한곳에 쌓아둔 경우도 있었다. 취급하는 만화의 종류와 양은 정말 방대하니 '성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명성만큼이나 새로운 건 없었다.
덴덴타운에서 마주친 재특회 사람들(재특회는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저 시위가 재특회에서 발현한 것으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도 그 맥락은 유사하므로 이렇게 적었다.). 일본어 까막눈이라 같이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일본 내에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위라고 한다. 내용은 "중국인들의 국민성이 낮으니 일본을 떠나라"라는 지극히 인종차별적 내용.
재특회 시위에 대하여 사람들은 무심한 반응을 보인다. 그다지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최근 기사에 보면 일본인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반한 감정이 재특회의 시위 이후로 과반수 이상을 넘었다고 하니 일본인 정서에 보이지 않는 듯 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다. 경상북도청에 속한 독도 관련 부처에 일하시는 공무원께서(일어 전공)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일본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앙케이트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독도 관련 앙케이트에서 '독도가 일본땅이다'라고 응답한 일본인의 비율이 비교적 적다는 것에 우리 정부가 반색할 때, 그것이 일본 국민의 제대로 된 정서를 반영한 게 아니라는 차원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재특회를 이끄는 수장인 사쿠라이 마코토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숨어서 싫어하던 일본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특회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많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그 중에 MBC PD수첩과 SBS그것이알고싶다에서 다룬 다큐를 추천한다. 재특회는 교토에 있는 재일코리안 민족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욕설을 퍼부으며 분위기를 공포로 몰고 간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하여 1,20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 재특회 행위에 일부 동조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행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은 모양이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며 자진해서 거리로 나와 '한국과 일본, 친하게 지내요!'를 외치는 반혐한 시위대 카운터(Counter)도 활동한다.
PD수첩(983회), "혐한, 일본은 무엇을 노리나?", 2014-01-28
그것이 알고 싶다(839회), "누가 김태희를 쫓아냈는가?", 2012-03-10
재특회와 관련한 일본인 저자의 책. 프리랜서인 르포기자인 저자가 1년이 넘는 관찰을 통해 지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일명 극우사이트 '일베'와 연관지어 보며 읽으면 재미있는 책.
그러나 자국민이 갖게 되는 이런 무분별한 제노포비아의 바탕은 인종차별이라기 보다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보호와 복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이 이주하여 자신의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의식의 개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정부의 역할이 충분했는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헤이트스피치 성격의 시위를 하는 이들을 제재하기 보다는 경찰이 나서서 안전을 보장하고, 이들을 위해 교통을 통제하는 모습은 의외이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위의 상황과 연결해서 보자면 무능력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기 보다는 분노하고 무기력해진 국민들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그것을 쏟아내는 게 훨씬 속편할테니 말이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갖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분위기 전환 차, 오사카 생활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걸어서 이동은 불가하고 대중교통을 타야한다. 이 곳은 1930년대(라고 나와있던 걸로 기억함.)의 일본 모습을 재연해 놓은 세트장이 있다. 그곳에서 유카타를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그런 종류의 문화체험에 관심이 이는 사람이라면 들려볼 만 하다. 대신 학생증이 있으면 입장료의 상당 부분이 할인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한국의 학생증도 가능함)
양말은 체험이 끝나면 선물(?)로 준다. 저 반이 갈라진 양말의 모양은 돼지 족을 닮았는데, 그래서 '쪽바리'라고 일본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돼지'족발'에서 파생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내 족발인지 일본인 족발인지 알길이 없으니, 비하하는 단어의 사용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같다.
유카타 입은 모습은 창피해서 동행한 지인과의 발 사진을 첨부함.
오사카는 기존에 생각했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람들의 성경이 '괄괄'하고 말투도 거칠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부산 쯔음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나에게도 말투가 빠르고 강하게 들렸다. 짧은 시간의 여행 동안 내가 경험한 일본의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그래서 더 다채롭게 느껴진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본의 모습은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을 것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무의식 속 나의 선입견을 바꿔놓은 것 만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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