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Kyoto] 도시샤대학 그리고 교토의 얼굴들
2014-05-26
오사카 여행을 가게 된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 만큼이나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교토(Kyoto)와 나라(Nara) 등 주변의 소도시다. 이 글은 나에게 기대했던 일본의 얼굴을 보여준 곳이자 일본의 대학생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 곳, 교토에 관하여 담고 있다.
내가 담은 일본 :)
오사카에서 교토로 향하기 위하여 JR선을 탔다. 각 나라마다 고속열차를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도시별로 이동할 수 있는 열차는 JR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 글은 필자의 여행 경험과 이에 동반하는 사념에 대해 담고 있기 때문에, 일본 대중교통 체계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셔야 정확합니다.) JR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찰칵. 벽화를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사진으로 남긴다.
교토에 방문하는 첫 번째 목적은 도시샤대학을 방문하는 것이다. 도시샤대학은 윤동주와 정지용이 수학했던 일본의 대학으로, 두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두 시인과 관련된 문화행사도 종종 이루어지는 듯 하다. (물론 윤동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교수가 몸을 담고 있는 타 대학에서 더 많은 활동이 있기도 함.)
분위기가 참 좋다. 대학구경은 어딜 가도 신선한 경험이다. 총명한 젊은이들이 활기 띤 얼굴로 지나다니는 걸 보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때때로 나는 정체되어 있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경험하게 되는데(그럴 때는 시간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체되어 있는 나와는 상반되게 같은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모로 감화된다.
시비에는 누군가 남긴 헌화와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비가 와도 젖지 말라고 플라스틱 화일 안에 넣어진 그의 책.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지만 종종 외부인이 찾아와도 시비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묵념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제지하거나 불편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비 옆에는 두 시인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놓은 또 다른 비석이 있었다. 시비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가지 언어로 되어있다.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서 도시샤대학 안을 구경했다. 일본어를 몰라 귀동냥을 해봐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학교 내부에 유적지가 발굴되어 있는 모양. 그에 대한 설명글을 볼 수 있었다. 한 켠에는 라운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일부 학생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금연 또는 건강에 관련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학교의 풍경은 한국의 대학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이 떠오르면서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해봐도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일본에서 유학하신 분들이 몇 분 계신데, 그 분들은 워낙 오래 전에 유학을 하시긴 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비교적 한국과 유사한 사회를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나를 위해 동행해 준 오사카의 일일 가이드(지인이 소개해 준 오사카 교환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일본인의 국민성은 진심으로 대하고 마음을 터놓기에 상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무언가 '얻어갈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먼저 다가와주지도 않으며, 교환학생 사회 내에서 노골적으로 서구인을 선호하는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섬나라 국민들의 특성에 대하여 '겉과 속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섬나라라는 것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음을 의미하고, 이러한 특징은 자신이 속한 지역 외부로 진출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그 사회의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때문에 공동체 내에 다른 일원들의 평가에 민감해지며, 쉽게 눈치를 보게 되고 조심스럽고 계산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된다. '이지메(따돌림)'이라던가 '뒷담화'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본사회를 대변하는 키워드가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물론 이런 지리적 특성에 따른 접근법은, 오사카 국민들의 예외성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제주도 또는 부산시민들의 모습에서 확인이 가능하듯, 바닷가에 가깝게 사는 사람들은 자연과 늘 대적하게 되기 때문에 비교적 반응속도가 빠르고 '괄괄'한 느낌을 준다. 수도인 도쿄와 오사카의 일본시민들은 그러한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미시적 관점을 접어두고 나서 다시 일본사회 전체에 대하여 개괄하자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스페인 유학 시절에 가깝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들이 있었는데(온통 유럽인들로 둘러쌓인 그 때에는 생김새가 유사한 일본, 중국, 대만 국적의 사람들과 상당히 친분을 유지하게 된다. 왜냐면 외모의 유사성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은 필리핀 혼혈의 대학생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일본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독일인과 결혼하여 스페인에 정착한 가정주부였다. 생활환경 자체가 '글로벌'한 이들을 일본의 일반 국민들과 비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들을 타파하거나 동시에 강화한 사람들이 바로 이 두 명이었다. 일본인들은 아주 세심하고, 겉치레를 중시하며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기 위해서는 나 또한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일본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종류의 인간관계에서든 통용되는 공통의 '질서'다. 그들로 하여금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 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는 우리사회도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다시 교토의 거리로 돌아와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칼로리 소모가 커진다는 메시지를 담은 지하철 계단. 공간이 말을 거는 듯한 이러한 구성이 좋다.
내 머리 속에 박힌 소학교의 일본 여자아이 모습. 네모난 까만 가방과 바가지 머리. 살짝 휘어진 오다리. 뒷모습이 너무 앙증맞아서 사진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곤니찌와~'라는 인사를 건네야 할 거 같은 교토의 KFC아저씨. 흔히 사람들은 대중교통, 식당 앞에 서 있는 입간판과 마네킹 등 일상적인 구조물에 돈을 써서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조금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있으면 그 도시에 색깔을 입힐 수 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같은) 여행객들에게도 그 도시가 가진 문화와 고유의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시도는 양 손과 양 발까지 들고 환영이다.
일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귀신을 점지해준다고 한다. 문, 연필, 공책, 창문 등등. 그러한 잡귀들은 '물건을 낭비하지 마라', '학용품을 소중히 해라' 등등 생활 전반에 아주 친밀하고도 사소한 가르침을 준다고 하는데, 이런 미신들은 일본사회 전반에 아주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듯 하다. 유일신을 섬기는 일부 종교들이 일본에서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한 일본국민들의 성향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각종 신사를 거리 끝에서 마주할 수 있다.
본인의 운을 점쳐보고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묶어두고 간다는 장대의 끈. 이런 점괘를 확인하거나 운을 비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이런 거 하면 사람들이 돈 아깝다고 할 듯.. :p
신기한 인력거. 일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여자분이 끌고 다녔음. 도로가 불편하거나 오르막길이 많지 않은데도 인력거를 탄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비는 추척추적 내리고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운데 까마귀가 까악까악 우는 데다가 까만 옷을 입은 인력거꾼이 지나치니 구한말 느낌. 그런데 일본에선 까마귀가 우리나라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새가 아니란다.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지나쳐오니 절을 가는 길에서 각종 부적을 판다. (따라다닌 거라서 위치는 정확히 기억 안남. 헤헤) 연애운, 건강운, 금전운 등 각종 운을 빌어주는 부적들. 모양도 상당히 예쁘다.
돈을 넣고 종이에다가 원하는 소원을 적는 공간. 글씨를 적고 종이를 테이블 옆에 물 바구니에 넣으면 종이는 녹아서 가라앉고 글씨만 동동 떠오른다.
일본의 불교문화나 절 등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윤홍준 교수의 일본답사기 영상을 보는 것도 좋다. 물론 사학자와 예술가, 건축가 등과 함께 동행한 것 치고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고견은 생략되어 있지만 옛 불교문화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한국과 일본간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교토, 나라, 고베 지역 등을 대상으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최근 책으로 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라편, 교토편』을 참고하여도 좋다.
긴 여행의 회포를 달래며 일본라멘으로 마무리했다. 일본에서 먹는 일본라멘. 사실 한국하고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일본라멘 자체가 워낙 맛있어서 술술 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이 많음.
이 날의 교토 여행은 비 때문인지 기모노를 아름답게 차려입은 유곽의 여성들도 볼 수 없었고, 강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나라 횟집(;;)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교토는 벚꽃이 찬란한 화창한 봄날에 가야 그 진가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기념품을 파는 교토거리에서 만난 향초가게의 아가씨가 너무도 유쾌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한국 관광객을 위하여 온몸으로 춤을 추듯 향초의 향기에 대해 설명해 준 그녀가 있는 향초가게야 말로 나에겐 교토 최고의 관광명소였다. 역시 여행은 늘 사람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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